Abstract
페미니즘이라 하면 오로지 여성 인권만을 다루는 것에 의미를 좁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페미니즘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여성성과 남성성의 구별이 아닌 성의 평등이다. 그동안의 단답형 방식으로 미리 편을 가르던 소극적 구별이 사라진다면 그것은 가부장제의 관습에 젖어있던 사회가 지금보다 더 높고 넓게 행복해지는 순간이 될 것이다. 들뢰즈는 생성, 즉 있음에서 있음으로의 변화는 새로운 배치로 자리잡는 것으로 본다. 이것은 아장스망(agencement)을 통해서 이뤄진다. 창조가 무에서 유에로의 변화라면, 생성은 존재하는 각자의 객체들이 새롭게 재배치되거나, 재구성함으로써 다른 존재로 변화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 조건은 있음에서의 변화를 말한다. 이런 과정을 거친 새롭게 변화된 것, 새로운 생성물을 들뢰즈는 multiplicity라고 정의하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다중체 혹은 다양체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전경린의 소설집『천사는 여기 머문다』는 내용상 여성의 인권, 시대적 차별, 성의 형평성 등을 놓고 볼 때 페미니즘의 한 주류를 이루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에 수록된 소설들의 전개과정에서 사건 해결의 실마리는 ‘강‘과 ’꽃‘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작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건을 전개하고 여러 흔적을 남긴다. 그 간격은 비록 이질적인 사건이라도 일정하게 타자와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배열되고 배치된다. 작중 인물들의 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강’과 ‘꽃’은 서사구조에서 단순한 이미지로 작용하지 않는다. 그들은 주인공의 삶의 질서를 변화시키면서 개체에게 ‘주름’을 만든다. 그것은 다시 관계를 형성하게 되고, 바라보는 사유방식이 어떠하냐에 따라 사건은 매우 다른 양상을 나타낸다. ‘주름’에서 탄생한 ‘다중체’는 한쪽이 다른 한쪽을 밀어내면서 주변화하고 소외시키는 결과를 만들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