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한 사회에서 유행하는 특정 종교는 그 사회의 특성이나 기본적인 구성원의 인식을 반영하게 된다. 특히 하나의 종교가 다른 사회로 유입되어 그곳에서 정착,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사회적 특성의 반영이 필수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종교의 각종 사회, 문화적 활동들 속에는 그것을 유지, 존속시키는 사회 구성원들의 생각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삼국시대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현대까지 끊임없이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는 불교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본고는 조선후기 불교 사찰의 문화적 활동 사례인 ‘불교가사’에 ‘여성’의 모습이 어떻게 형상화되어 있는지를 확인하고, 이를 통해 문화적 의미를 도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조선 사회에서 불교의 논리는 상당히 남성 중심적이었으며, 우리나라에서 유통된 불경 및 불서에도 이러한 인식이 기본적으로 반영되어 있었다. 불교가사 역시 기본적으로 포교 등의 목적을 위해 불서의 내용을 담아 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인식들이 반영되었으며, 여성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사례들을 다수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19세기로 접어들며 폭발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회심곡> 사설에서는 조금 다른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회심가> 사설에서는 ‘여성’을 중요한 향유의 대상으로 다루고, 남성과 대등한 차원에서 사례를 제시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불교 사찰에서 여성의 역할과 문화적 역량은 상당하였던 것으로 확인된다. 특히 시대적으로 여성 의식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상황과 더불어, 불교의 세를 유지하고, 문화적 활동을 전개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던 ‘여성’에 대하여 재인식하며, 그것을 문화 활동으로 다시 반영하는 모습을 조선후기 불교가사 사설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불교가사에서 발견할 수 있는 ‘여성 형상화’의 모습이 달라지는 현상은 20세기 초반 불교계의 중요한 화두 중 하나였던 여성 담론의 전개와도 맞닿아 있는 것이다.